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디 음악 (문단 편집) === 국내에서의 역사 === ||[[파일:xnXMZ6h.jpg|width=100%]]||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뷰렛(밴드)|뷰렛]], [[페퍼톤스]], [[언니네이발관]], [[델리스파이스]] || 국내에서 이른바 '인디 음악'은 보통 1990년대 이후 '''[[홍대거리|홍대]] 앞을 중심지로 하는 록 관련 음악'''들을[* 장르적으로는 [[록 음악]] 중에서도 [[모던 록]]이 가장 주류고, 그 외 [[포크 록]]이나 [[사이키델릭 록]], 홍대 인디 초창기를 수놓은 [[조선 펑크]] 등이 있다.] 지칭하는 용도로 많이 쓰이고 있다.[* 물론 [[힙합]]과 같은 다른 장르의 인디 신 역시 엄연히 존재하나 한국에서는 첫 시작이 이 장르였다보니 보통 '인디'하면 록 음악부터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한국 인디 음악의 시작은 서구와 비슷하게 90년대 [[얼터너티브 록]], [[펑크]]를 구사하던 뮤지션들이 주도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70~1980년대 신촌을 중심으로 하는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도 있지만, 본격적인 '유통 방식'으로서 인디 음악은 전술했듯 1990년대 중후반 홍대 앞 뮤지션들을 시초로 본다. 국내 최초의 인디 음반은 1996년에 발매된 [[크라잉 넛]]과 [[옐로우키친]]의 스플릿 앨범 을 그 시초로 보는 경우가 많지만, 날짜상으론 배드 테이스트의 앨범이 1996년 1월 발매로 더 빠르긴 하다. 다만 이 상업성이나 저명도 측면에서 압도적으로 높다보니 이쪽을 홍대 인디 음악 활성화의 시초로 보는 것. 참고로 이때 앨범은 홍대 라이브 클럽의 시초격인 [[드럭]]의 사장이 크라잉 넛의 가능성을 보고 본인 전세 자금 빼서 만들어줬다고 한다. 1500만원의 예산으로 CD 5천장, 카세트 테이프 15000개를 손수 제작해 판매했는데 이게 대박이 나서 당시 드럭 앞에 대기줄이 쭉 늘어섰다고 한다. 이때부터 홍대 라이브 클럽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한 것.[* 이에 당시 정치권도 법 개정을 해주며 홍대 인디 음악 붐에 호응했다. 1970년대 제정된 식품 위생법 때문에 당시만 해도 유흥업소가 아닌 라이브 클럽에선 2인 이상 공연이 불가했는데(때문에 초기엔 걸리면 벌금 물고 공연했다고 한다), 이에 당시 홍대 인디 밴드들을 중심으로 법 개정 운동이 일어나 1999년 라이브 클럽 공연이 합법화된다.][* 참고로 이때만 해도 홍대 인디 뮤지션들은 돈을 받는 경우는 드물었고, 받아도 소액이거나 식당 술 무료 등 다른 서비스를 제공받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다만 연습실 대용이라 그 돈 굳는 것 + 홍보 효과 + 청중들한테 노래할 수 있다는 만족감 때문에 다른 일로 돈 벌면서 앨범 준비하는 등 계속 했다고 한다. 걔중엔 크라잉넛처럼 진짜 사장이 자기 돈 투자해서 앨범 내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애초에 사장님들도 임대 받아서 가게 하는 처지가 많았던걸 감안하면 많진 않았을듯. 이후 이런 홍대 인디 뮤지션들의 성장 루트는 시간이 지나면서 성공했을 시 평일 클럽 공연->주말 클럽 공연->각종 음악 페스티벌 오프닝-5시-7시-9시 헤드라이너 순으로 점점 발전했다고 한다.] 그렇게 1990년대 말부터 성장한 한국 인디 '''1세대''' 음악은 [[크라잉 넛]]과 [[노브레인]]으로 대표되는 [[조선 펑크]]와 [[델리스파이스]]나 [[언니네 이발관]]으로 대표되는 [[모던 록]] 2가지로 큰 흐름을 형성하여 진행되었다. 그 외 [[노이즈가든]], [[레이니 썬]], [[어어부밴드]]처럼 위의 두 분류에 넣기 어려운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한 밴드들도 여럿 있었다. 이 시점의 뮤지션 및 인디 밴드들을 '인디 1세대'라 불렀으며 이후 [[크라잉 넛]], [[언니네이발관]], [[자우림]], [[체리필터]] 등이 메이저 시장에서도 인지도와 호응을 얻기 시작하면서 인기를 얻었다. 동 시기 [[넬(밴드)|넬]], [[못(밴드)|못]], [[피아(밴드)|피아]], [[피터팬 컴플렉스]]와 같이 [[라디오헤드]]의 영향을 받은 얼터너티브 밴드들도 등장하였다. 이는 같은 시기 영국에서 [[콜드플레이]], [[뮤즈(밴드)|뮤즈]]가 등장한 것과 유사한 패턴이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이 되면서 기존 인디 1세대 밴드들이 점차 인기를 잃기 시작했고 후발 주자로서 대중의 인기를 끌만한 밴드들도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음반 시장 자체가 음원 시장으로 교체되면서 죽어가던 시기라 여러모로 힘든 시기였고, 한국 인디 밴드의 원류가 되는 영미권 록 음악 시장에선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 붐이 일었지만 90년대 얼터너티브 록 붐에 비하면 규모가 작아[* 영향이 전혀 없는건 아니었고 [[검정치마]] 같은 개러지, [[포스트 펑크]] 색채를 띄는 밴드도 등장했다.] 서서히 록 음악이 주류에서 밀려나기 시작한 것도 한 원인이였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2005년 발생한 [[생방송 음악캠프 알몸노출 사건]]은 당시 인디 음악을 향한 대중의 시선을 부정적으로 바꿔버린 치명타가 되었다. 직접적으로 연관된 조선 펑크씬은 이때 대거 몰락해 지금까지도 제대로 회복이 안되고 있으며, 2000년대에 등장하던 다른 장르의 인디 밴드들 역시 공중파에 자신들을 홍보하고 인기를 얻을 기회를 대거 박탈 당한다. 다시금 인디 음악에 활기가 돈건 그로부터 몇년이 지나 '''2세대''' 인디 뮤지션들이 출연하는 2000년대 후반부터였다. 인디밴드의 방송 출연이 사실상 금지된 2000년대 중반 암흑기를 지나 서서히 방송 규제도 풀리면서 [[국카스텐]], [[브로콜리 너마저]], [[장기하와 얼굴들]], [[갤럭시 익스프레스]], [[검정치마]], [[쏜애플]], [[달빛요정]] 등이 데뷔하였고 평론과 대중에게 인지도를 얻었다. 물론 이때도 인디 음악 시장의 양적인 규모는 1세대 시절에 비해 많이 위축되어 있는 상태였지만, 해외 록 음악이 몰락하기 시작한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 모순되게도 국내에선 다양한 인디 음악이 대중과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다. 슈퍼스타K가 국내 가창 오디션 붐을 일으키면서, 번외격으로 [[TOP밴드]] 시리즈와 [[밴드의 시대]] 등 밴드 관련 경연 방송도 제법 나왔고, [[온스테이지]]처럼 인디 음악을 중심으로 한 미디어도 생겼으며, [[국카스텐]]의 [[나는 가수다 2]] 출연 [[10CM]], [[장미여관]], [[장기하와 얼굴들]] 등 여러 인디 밴드들이 지상파 방송에 출연하며 인디 시장이 활성화되었다. 여기에 [[한국대중음악상]]을 비롯한 평단에서도 호평을 받는 인디 음악들이 많이 생겨났다. 이러한 흐름에 외국에서도 'K-ROCK', 'K-INDIE' 란 이름으로 인기를 얻었으며 다양한 밴드가 미국 음악 페스티벌인 에 참가하면서 한국 인디 음악은 제2의 도약기를 맞았다고 평가받았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 이후 신인 부재, 기성 인디 음악가의 부진 혹은 잠적[* 대표적인 1세대 인디 록 밴드인 [[언니네이발관]]은 2010년대 중반 해체되었고 리더 [[이석원]]은 음악을 그만두었으며,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사망, 2세대 록 밴드의 얼굴마담 격인 [[장기하와 얼굴들]] 역시 해체되었다.], 주무대였던 홍대 인근의 상업화 문제와 인디 음악을 향한 대중의 관심이 감소하면서 다시 부진에 빠지게 된다. 이 외에도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대마초 사건, 인디계 성추문 [[미투 운동]] 등이 일어나며 다시금 인디 음악의 이미지가 악화되었다. 특히 2020년 [[코로나19]] 사태는 당시 여러 인디 공연장들이 폐업할만큼 홍대 인근 인디 씬에 큰 타격을 주었다. 물론 이런 힘든 여건에서도 [[볼빨간사춘기]], [[신현희와김루트]], [[멜로망스]], [[혁오]], [[잔나비]] 등이 음원 차트에서 흥행하며 분위기 반전을 이끌어냈으며, [[국카스텐]]의 [[하현우]]가 [[복면가왕]]에서 9관왕을 거두며 밴드의 인지도를 크게 높였다. 2020년대 초반은 [[실리카겔(밴드)|실리카겔]], [[새소년]], [[SURL]], [[나상현씨밴드]] 등 인디 음악가들이 출연하며 '''3세대''' 인디 음악계에 활기를 불어넣었으며, 특히 이 시점부터 [[포스트락 마이너 갤러리]], [[힙합엘이]] 등 여러 인터넷 음악 커뮤니티 출신 인디 음악가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포스트락 마이너 갤러리 등지에서는 [[슈게이징]], [[IDM]], [[포스트락]] 등 기존의 주류 음악 계층과는 달리 보다 다양한 언더그라운드 음악가들이 활동하면서 음악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데, [[파란노을]]의 2집이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자 갤러리 내부에서는 파란노을에게 영향을 받아 창작 활동을 더욱 활발히 이어나가고 있으며 몇몇은 자신의 앨범을 [[https://m.dcinside.com/board/postrockgallery/528502|무료배포]]하거나 자체적으로 모여 [[Postrockgallery Compilation Vol. 1|컴필레이션 앨범]]을 만드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해당 갤러리에서 활동하던 [[파란노을]], [[아시안 글로우]]와 같은 음악가들이 입소문을 타고 해외의 힙스터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알려지기 시작하며 [[피치포크]] 등지에서 고평가를 받는 등, 기존의 한국 음악계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일들이 일어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